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게노부 후사코 (문단 편집) == 여담 == || [[파일:external/2fbaefeeff643284eb8a7892b57e268158a7aa3501e84ee953ca83dd8d05f258.jpg|width=100%]] || [[파일:external/www.ne.jp/123_ki.jpg|width=100%]] || || 젊은 시절의 사진 || 체포되는 장면 ||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젊은 시절의 시게노부 후사코의 외모를 묘사할 때 꼭 들어가는 서술이 '긴 머리에 미인형'이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상당히 수수하고 소박하게 생겼다. [[http://www.sankei.com/west/photos/140731/wst1407310076-p5.html|링크]] [[쇼와 시대]]의 느낌이 나는 미인인 듯하다. 사실 '긴 머리에 미인형' 이라는 수식어는 [[1970년대]] [[일본]]에서 시게노부 후사코가 남긴 일종의 비쥬얼적 충격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호의적으로 보면 나름 예쁘장하다고 할 만한 수수하고 소박한 젊은 아가씨의 외모와 극좌 테러리스트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행적 사이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괴리감이 사람들에게 큰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 것. 말하자면 <참하고 얌전한 옆집 아가씨가 알고보니 극좌 과격파 조직의 수반으로 해외에서 테러활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한 충격과 괴리감을 안겨준 것. 차라리 강인하고 거칠어 보이는 인상이었다거나 미인이라도 좀 더 반항적이거나 기가 세 보이는, 하다못해 화려한 느낌이기라도 했다면 외모로 인한 충격은 덜했을 것이다. 굳이 긴 머리가 자주 거론되는 것 역시 별다른 장식이나 모양을 내지 않고 그저 단정하게 빗어내린 긴 머리가 얌전한 여성성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져 더욱 생경하게 여겨진 것. 사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게노부 후사코의 인생사 자체가 조금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여러 형제자매 중 하나로 태어나 성실하게 공부와 집안일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에 취업하여 집안을 도우면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야간대학에도 진학하는 등 얌전하고 성실한 젊은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역시 일본 학생운동의 전성기와 그 뒤를 이어 찾아온 불량문화의 전성기에 흔히 받아들여졌던 '시끄럽고 위험한 젊은이의 전형'과는 전혀 달랐던 것.] 덤으로 시게노부 후사코의 아버지는 [[극좌]] 성향인 딸과는 정반대로 [[극우]]였다고 한다. 시골에서 작은 서당을 운영할 때 가르쳤던 제자 중에서 [[5.15 사건]]과 [[2.26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된 인물이 있어서 제자의 유고를 읽으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고 할 정도였다. 다만 나름 지조와 사상이 있는 신념형 [[극우]]였는지 전후 혼란기에 먹고 살기 위해 식료품점(구멍가게)를 열었을 때 주변에 사는 [[재일 한국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했고 이 덕분에 가게에 야쿠자가 쳐들어와서 돈을 뜯어내려고 행패를 부릴 때 주변에 살던 재일 조선인들이 도와주러 몰려와서 야쿠자를 쫒아내주었다고 한다.[* 야쿠자를 직접 두들겨패서 쫒아낸 것이 아니고 건장한 체구의 재일 조선인 남성들이 서로 단단히 손을 마주잡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폭력조직원을 둘러싸고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직접 폭력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 위압감이 대단했는지 폭력조직원이 겁에 질린 채 울며 사과하고 돌아갔다고 할 정도.][* 당시 [[일본]] [[극우]]는 사상적으로 좀 복잡한 경우가 많아서 [[내선일체]]나 [[아시아주의]]를 진짜로 믿고 실현하고자 하는 부류도 많았고 정말로 [[조선]]과 [[일본]]이 하나가 되려면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아시아주의]] 항목 참조. 심지어 [[기타 잇키]]같은 경우는 [[조선]]을 완전히 [[일본]]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반도에서 도군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재일 한국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절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다는 일화도 있고 시게노부 후사코 역시 자신의 책에서 이런 아버지가 몹시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했다. 이외에도 정치활동(과격파 학생운동)에 투신한 딸을 무척 깊게 이해해 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지나친 과격노선으로 치닫던 적군파의 활동 내용을 보고[* 딸의 '시위 도중 경찰과 충돌이 일어났을 때 동료 운동가들과 함께 경찰을 마구 두들겨팼다'고 자랑하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한다.] '혁명이란 일살다생(一煞多生: 한 사람을 죽여 많은 사람을 살린다)이어야 하는데, 그런 과격노선으로는 일살일생(一煞一生: 한 사람을 죽여 한 사람을 살린다) 밖에 할 수 없다'고 타일렀다거나 중동으로 출국하려는 딸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할 거라면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격려했다거나 딸이 출국한 이후 인편을 통해 '[[대의멸친|대의란 불효와 같아서 육친을 죽인다]]'는 시를 전해 주게 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적어도 시게노부 후사코란 개인의 일생을 두고보면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결국 [[일본 신좌파]]도 길게는 [[임진왜란]] 이후 포로로 잡아온 조선 유학자들이 전파한 성리학이 막부 말에 키워 존황양이란 혁명 이데올로기로 한 번 세상을 뒤엎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메이지 일본 사회의 주류 관료-재벌 엘리트와 충돌하며 급진적인 아시아주의적 팽창주의 극우 혹은 소수는 극좌로 투신했던 일본식 지사 전통의 연장성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시게노부 후사코는 어찌 보면 방향만 다를 뿐이지 근본적인 철학이나 삶의 자세는 공유했으니 정치적으론 반대 성향인 아버지가 오히려 인간적으로 이해해 준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쁘게 보자면 비행기 하이재킹에 테러, 사람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지극히 과격하고 대의만 좋으면 과정이나 방법은 상관없다는 막나가는 테러리스트스러운 도덕적 무책임함도 [[기타 잇키]]의 저서에서부터 발견되며 주류였던 우익 바리에이션으론 바로 그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전쟁이란 거대한 역사적 똥덩어리를 빗어낸 일본식 지사적 전통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다른 여담으로, 시게노부 후사코의 아버지는 작은 서당까지 운영한 지식인으로써 지역 사회에서는 (가난하기는 했어도) 상당한 유지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영향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하기 전부터 지역 출신 국회의원의 아들[* 2세 의원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당연히 그 지역구를 물려받을 후계자로 여겨졌다.]과 약혼 이야기가 오갈 정도였다고 한다. 상대측 역시 시게노부 후사코의 성격이 정치인의 부인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적군파의 주요 간부 중 하나가 된 것을 보더라도 상당히 리더십과 과단성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게노부 후사코 본인은 자신이 학생운동에 투신한 뒤 '어차피 일본에 혁명이 일어날 리는 없고, 너는 결국 운동을 포기하고 내 품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는 상대 남자의 태도가 대단히 재수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편 시게노부 후사코의 아버지 역시 이 혼담을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상대 남자를 상당히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일단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상당한 집안과의 혼담, 즉 흔히 말하는 좋은 혼담인 데다 상대편 집안이 훨씬 가세가 좋은데도 호의적으로 나오니 혼담 자체는 잘 되면 그대로 진행되어도 좋다고 보고 반대하지 않았지만 사윗감 자체는 썩 탐탁치 않게 여기는 정도의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젊은 사람답지 않게 너무 건방지고 오만해서. 예를 들어 젊은이가 연하장을 보내면서 직접 손으로 써서 보내지 않고 인쇄된 연하장에 이름정도만 써서 보내는 모습 등이 나이에 비해 오만해 보였다고 한다. 시게노부 후사코 본인과 아버지의 평가가 일치한 점으로 볼 때, 성격적으로는 확실히 좀 오만한 면이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운동권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고 차까지 마신 뒤 주머니를 털어보자 돈이 모자라서 모두들 지인들에게 돈 좀 빌려 달라고 전화를 하는 와중에 국회의원 아들이니 돈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고 마음에 둔 여자가 밥값 좀 내 달라고 하자 얼른 달려온 남자는 운동권 학생들이 모여 있는 모습에 빡쳐서 '이 돈은 너희 같은 좌익들에게 기부하기는 아까운 돈이다. 시게노부씨가 책임지고 갚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나름 뼈 있는 한마디를 남기고 음식값을 대신 내 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시게노부 후사코가 자기 밥값을 내 달라고 한 것이었으면 그냥 자기가 냈다고 생각하지, 갚으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시게노부 후사코는 이 돈을 갚지 않았고 관계는 이후 끊어졌다고 한다. [[http://www.etoland.co.kr/data/daumeditor10/201103/15717816043294201.jpg|사진]] 어찌된 영문인지 해당 사진이 시게노부 후사코라는 해괴한 소문이 오래 전부터 돌았다. 심지어 저 사진이 올라온 원 [[http://www.etoland.co.kr/plugin/mobile/board.php?bo_table=etohumor03&wr_id=1625021|링크]]의 댓글에도 그런 언급이 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며 해당 인물은 1980년대 일본 여배우 [[이라가시 이즈미]]로 1987년에 출연한 “[[少女コマンドーIZUMI]]”라는 특촬 영화의 한 장면이다. 해당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검색해 보면 나오는 정보다. 사실 이 사진은 시게노부 후사코라는 인물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이름을 날린 인물이 정말 쌩뚱맞게도 웬 교복을 입고 [[M72 LAW]]를 들고 있으며 뭔 [[존 람보]]도 아니고 [[기관총]] [[탄띠]]까지 각개로 차고 있다. 얼핏 보아도 일본의 흔한 특수 촬영 영화스러운 구성의 사진이다. 무엇보다 이목구비부터가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약간의 의문을 가지면 해당 사진이 이상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의문도 안 가지고 그 내용만으로 바로 믿는게 더 이상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링크 댓글에 올라온 사진은 딱 봐도 배우의 화보 사진이다. 해당 낭설이 전세계적으로 퍼진 걸로 보아 오래 전 어느 외국인의 실언이 그 시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